정규직 채용하기 싫으면, 법을 안지키면 된다?

파견 허용직종의 파견노동자에 한해서만 정규직전환 판정, 근로자파견법에 허용되지 않은 불법파견노동자들은 2년이 지나도 정규직 전환의무가 없다는 해괴한 판정을 내린 중앙노동위원회를 규탄한다!


우리 화학섬유연맹은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린 인사이트코리아노조 조합원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한 말도 안되는 판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연맹 산하 인사이트코리아노조 조합원 4명은 근로자파견법을 무시한 SK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되었고 1년동안 복직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3월 2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도급을 위장하여 불법파견을 사용해 온 사용업체가 당해 파견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했고 SK는 이에 불복, 중노위에 재심신청을 했다.

화학섬유연맹의 모든 조합원들은 해고 당시 만2년∼8년까지 계속 같은 일을 해 온 조합원들이 중노위에서도 당연히 원직복직·정규직 전환 판정이 내려지리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발송된 중노위 판정은 이런 노동자들의 기대를 무참하게 박살내고 근로자파견법의 원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중노위의 판정은 아주 간단하다. 중노위는 △SK가 그동안 인사이트코리아로부터 도급을 위장한 불법 파견노동자들을 받아온 사실은 인정 △실질적으로 업무를 지휘·감독한 것도 SK라는 사실 인정 △그러나 SK는 인사이트코리아노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노조가 SK를 상대로 제소한 부당노동행위 불인정 △근로자파견법에 허용 명시 된 합법적인 파견업무에 종사한 사람에 한해서만 복직 판결 △근로자파견법에 허용되지 않은 직종의 노동자들은 불법으로 파견을 받아왔더라도 2년이 지난 후에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견법에 허용된 업종인 사무보조원으로 일 한 김인선 조합원만 정규직 전환을 해야하고 다른 3명은 몇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하다 해고당했더라도 부당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중노위는 "파견근로자보호법률을 적용하여 고용의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당해 근로자의 업무가 같은 법률 제5조에 의한 근로자파견대상업무에 해당하는 업무까지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인바"라며 불법파견노동자 3명의 정규직 전환을 봉쇄했다. 중노위의 판정대로라면, 정규직을 고용하기 싫은 회사는 2년동안 일을 시키다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하거나, 파견법에 허용되지 않는 불법파견노동자들을 받아서 일을 시키다가 10년 후나 20년 후나 상관없이 아무 때나 해고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이 왜 존재하는 것인가? 법률에는 이 법률의 목적이 '파견근로자의고용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라고 분명히 명시되어있다. 어디에도 불법으로 파견된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안된다라는 조항은 없다. 더군다나 근로자파견법은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근로자 파견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노동계는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법률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헛점이 많은 법마저도 지키지 않고, 노동위원회가 기업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준다면 도대체 법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번 중노위 판정은 비단 부당해고 노동자 3명의 패소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모든 파견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은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판정이다. 수많은 파견 노동자들이 정규직의 반도 안되는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으며,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기업들의 삐뚤어진 경제논리, 이를 비호하는 노동위원회. 법은 가진 자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잘못된 법은 못가진 자를 더욱더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본가들의 논리만을 맹신해서 파견노동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중앙노동위원회는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 화학섬유연맹 3만 2천 조합원들은 이번 중노위 판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앞으로 중노위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파견노동자를 양산하는 파렴치한 SK를 상대로 가열찬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또한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근로자파견법을 개정하기 위한 투쟁도 함께 해나갈 것을 밝히는 바이다.

2001년 10월 18일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