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일반해고 행정지침 강행 노린 면피용 토론회, 좌시하지 않겠다

- 노동부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운영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비판 -





오늘(11일) 정부가 ‘노사정 합의에 따른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 운영 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노사정 합의’란 일반해고제 도입의 근거를 규정한 “근로계약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 명확화” 항목을 가리키는데 후속 공청회까지 예정하는 등, 그 정황을 볼 때 정부가 결국 ‘일반해고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 발표를 위한 최종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정부는 노동개악 입법 추진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는 동시에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개악 요건 완화 동 노동개악 행정지침 발표까지 강행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오늘 토론회에서는 ▲채용-평가-보상-능력개발-퇴직관리까지 능력중심 인력운영 방안 ▲인사평가의 노동법적 쟁점 ▲직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해고 관련 판례 검토 등 세 개의 주제 발표가 이루어진다. 발제문 요지는 ①‘학력과 연공 중심의 인력운영’을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운영’으로 변화시켜야 하며 ②직무능력주의의 도입 및 확산과 더불어,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인사관리가 필요하며 ③직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해고를 둘러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도록 법적 판단기준이 구체적·체계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얼핏 봐서는 ‘직무능력 중심(성과주의) 인사체제’와 ‘일반해고’라는 말 사이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말만 보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 시스템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사정 합의문도 “공정한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할 뿐, ‘일반해고’를 명시하진 않았다. 때문에 정부의 숨겨진 의도를 살펴보기 위해선 노사정 야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작년 말부터 정부는 직무·성과 등 능력 중심으로 인사관리 체제를 재편하고 그 핵심으로서 저성과자 해고(일반해고)제도 도입을 줄기차게 추진했다. ▲‘업무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요건 명확화’(박지순·김희성·김기선, 「해고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2014.12, 고용노동부)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한 평가, 교정기회 부여 및 직무·배치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 공정한 절차 사내규정 등) 마련’(고용노동부, 「비정규직 종합대책」, 2014.12) ▲‘직무능력사회 정착을 위한 핵심적 과제로서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한국노동연구원, 2015.8) ▲‘성과주의 인사관리체제로 전환하는 추세를 고려한 해고제도의 정비 필요성’(박지순, 「근로조건 변경 및 근로관계 종료에 관한 쟁점과 과제」, 2015.9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등을 발표한 것도 그런 의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을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공정한 기준과 평가과정’을 통해 인사평가를 한다. 그 결과 하위평가자들이 나오면 이들에게 교정기회를 부여한다. 6개월간 교육 아니면 다른 업무를 부여(전환배치)하는 식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6개월 또는 1년 뒤에 재평가 하는데, 이때 다시 하위평가를 받은 사람은 해고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친 해고는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정당한 이유’를 갖춘 해고, 소위 ‘공정한 해고’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요컨대 ‘채용·인사평가·승진·배치전환·계약해지 등 근로계약 전반을 성과주의 인사평가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말과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같은 말인 셈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해고를 제한하는 원칙으로서 ‘정당한 이유’에 관해 ①노동자에게 책임이 있어야 하고(따라서 노동자에게 책임이 없는 때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가 아닌 이상 해고를 할 수 없고) ②그 정도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③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종합하면, 노동자의 실적 부진이나 업무 능력 부진만을 이유로 해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행 헌법, 법률 및 판례의 일관된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적 제한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정부 지침을 마련하려는 것이고, 이때 성과의 기준과 평가 및 활용은 모두 사용자의 재량에 맡겨진다. 결국 사용자의 뜻대로 해고를 쉽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정한 평가 체계’를 통해 ‘공정한 해고’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공정한 평가 기준이란 애초 불가능하다. 리더십이 있느냐, 부서원과 소통은 잘 하느냐, 책임감이 있느냐, 성실하냐, 적극성을 띠느냐, 창의적이냐 등 정부가 예시한 기준은 하나같이 주관적인 평가 기준들이다. 사용자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하위평가자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교정기회를 부여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재평가에서 얼마든지 자의적인 평가를 통해 다시 하위평가자로 만들어낼 수 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이 노동자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두게 하려고 엉뚱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업무를 주지 않으며, 독후감까지 강요하는 등 ‘학대해고’의 번거로움도 사용자들은 면할 수 있게 된다.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학대해고 합법화로 불리는 이유다.



또한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도입되면, 사용자들은 굳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라는 요건을 갖추거나, 사회적 논란이 되는 정리해고를 택할 이유도 사라진다. 저성과자 해고제를 활용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인력구조 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저성과자 해고제가 도입되면 부당노동행위 제도가 무력화되어 노동조합의 존립도 위태롭게 된다. 노동조합 간부나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을 적절히 섞어서 저성과자로 분류해 해고해도 부당노동행위 시비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원에게 불공정하게 평가 점수를 부여했는지 객관적으로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노동자에게 치명적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당하지 않는다는 노동법의 대원칙은 무너지고 사용자가 정한 성과를 해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독단적이고 가혹한 통념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부당해고로부터 노동자를 지켜주던 제도는 사용자의 해고를 합법화해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운영방안’이라는 모호한 말로 ‘일반해고’의 위험성을 숨기고 있다. 전문가라는 간판으로 포장된 관변 학자들을 앞세워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기만적인 토론회를 당장 중단하라. 민주노총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발표를 위한 정부의 구색 갖추기 꼼수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015년 12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