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도 피하지 못한 ‘석면공포’, 현장의 노동자는?

 

 

포스코 명예회장인 박태준씨의 사망원인이 석면 노출에 의한 폐질환이라고 한다. 한 생명의 명복을 바랄 일이다. 이 죽음을 두고 언론들은 60년대 70년대 다량으로 사용된 석면과 더불어 고인의 현장 중심의 경영스타일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현장을 누볐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현장과 거리가 먼 최고 경영진조차 석면의 공포를 피하진 못한 것이다. 하물며 60년대 포스코 제철소 건설 당시부터 현장에서 일해 온 건설일용노동자를 비롯해 포스코 전체 노동자의 석면공포는 누구보다 심각할 것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이에 대한 조명은 고인에 대한 예우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포스코는 1980년부터 30년 동안 석면광물질인 사문석을 다량 사용해왔다. 그러 인해 사문석을 캔 광산노동자, 운반한 덤프기사 노동자 모두가 석면에 노출돼왔다. 그럼에도 정부와 포스코의 석면대책은 현장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외면해왔다. 포스코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해 온 석면의 치명성은 누누이 지적돼왔지만 그 어느 곳 하나 확실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무관심과 안일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석면안전관리법을 시행한다고 하면서 석면 조사대상을 입법예고 했는데, 정작 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석면의 해체 철거 시에만 석면조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환경부, 노동부 어느 법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의 노동자들은 하루 8~10시간씩 일하는 현장에 석면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관리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석면은 잠복기간이 길기 때문에 특수건강검진과 건강관리 수첩 발급 대상이다. 그런데, 가장 열악한 공정에 종사하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작 기본적인 건강보호제도에서도 소외됐다. 석면가스켓 등을 사용하는 건설노동자가 건강관리 수첩을 신청하려면 10년 이상의 종사 경력을 제시해야 한다. 하청이기에 비정규직 노동자이기에 건강관리 수첩을 발급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2010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석면의 가장 큰 위험 직업군인 건설노동자가 석면 건강관리 수첩 발급자는 3년간 8명에 불과한 것도 그런 이유다.  

 

석면에 대한 산재인정도 하늘의 별따기긴 마찬가지다. 현재의 산재보상제도는 노동자로 하여금 석면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돼있다. 게다가 건설현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작업환경 측정 대상에서 제외돼 왔으며, 하청 사업주가 원청 현장의 작업환경 측정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하청업체 현실은 근무기록 자체를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현실에서 건설일용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해 석면성 폐암으로 산재인정을 받게 위해서는 대법원까지 가는 5년여의 소송을 진행해야만 했다. 죽고 나서야 그 억울함을 호소하라는 참담한 현실이다. 

 

철강신화 창조는 한 개인의 업적일 수 없다. 현장의 수많은 위험 요소들을 직접 몸으로 감수하며 묵묵히 일해 온 수많은 노동자들이 진정한 신화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칭송받는 것은 그 신화를 배경으로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고위급 인사의 몫일 뿐, 수 십 년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일용노동자들은 지금도 ‘소리 없는 살인자, 석면’의 공포 앞에 대책 없이 불안해하고 있다. 더 이상 그 때뿐인 졸속 대책이 지속돼선 안 된다. 민주노총은 현장 노동자의 석면공포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 대책을 거듭 촉구한다.  

 

2012. 12. 14.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