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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해고‧징계 3연타 악조노벨 왜 그러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2.04 16:59
  •  수정 2021.02.04 16:59
  •  댓글 0

악조노벨분체도료, 산재 복귀 노동자에게 해고 및 징계
​​​​​​​악조노벨지회, ‘노동조합 탄압’ 주장
4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악조노벨지회 산재노동자 부당징계 철회 촉구’ 기자회견 현장. ⓒ 화섬식품노조
4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악조노벨지회 산재노동자 부당징계 철회 촉구’ 기자회견 현장 ⓒ 화섬식품노조

네덜란드계 페인트회사 악조노벨분체도료가 산업재해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부당해고 복직 판정 이후에도 징계를 계속했다. 악조노벨지회는 회사가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르기 위해 이같이 행동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화섬식품노조 수도권본부(본부장 박현석)와 악조노벨지회(지회장 송중섭)는 4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앞에서 ‘악조노벨지회 산재노동자 부당징계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악조노벨지회는 1월 6일부터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악조노벨은 미국 포춘(Fortune)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으로 꼽힌 바 있는 세계적인 화학회사다. 악조노벨분체도료는 악조노벨의 분체도료(가루형태의 도료) 사업을 전담하는 한국법인으로 1985년 설립됐다. 공장은 경기도 안산시 화학단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약 120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2014년 4월 결성돼 화섬식품노조에 가입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승희 악조노벨지회 부지회장(당시 조합원)은 2018년 10월 동료를 도와주기 위해 분산기 위에 올라섰다가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변을 당했다. 반제품 형태의 분체도료칩이 분산기에 걸렸는데, 이를 치우는 과정에서 장갑이 롤러와 고정판에 말려 들어간 것이다. 본래 분산기 상단의 기계 덮개가 열리면 작동이 멈춰야 하지만, 오작동으로 분산기가 꺼지지 않았던 탓이다.

류승희 부지회장은 2018년 11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아 2019년 3월까지 요양에 들어갔다. 이 기간 동안 상처는 어느 정도 치료가 됐지만, 갑작스레 손가락을 잃은 정신적인 상처까지는 회복되지 못했다. 류승희 부지회장은 2019년 3월부터 2020년 1월 말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인정받아 재요양에 들어갔다.

이후 류승희 부지회장은 2020년 2월 1일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회사는 복귀 한 달 만에 징계위원회를 열어 4월 1일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징계사유는 회사 내부 안전수칙 위반이었다. 동료 노동자를 도와주려 분산기에 오른 것이 ‘안전수칙 위반’이 된 셈이다.

악조노벨지회는 회사의 징계에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회사는 2020년 4월 1일 류승희 부지회장의 해고를 강행했다. 지회는 이튿날 즉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호소했다. 노동위원회는 지회의 손을 들어줬다. 2020년 5월과 9월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중노위는 “류승희 조합원의 비위행위(안전수칙 위반)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 발생은 회사의 기계 오작동에도 원인이 있고, 회사도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매 분기 6시간 이상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지는 못했다”고 판단했다.

류승희 부지회장은 지노위 판결 이후인 2020년 7월 현장에 복직했다. 하지만 회사는 또다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명목은 노동위원회에서 이미 판정내린 바 있는 ‘안전수칙 위반’이었다. 2020년 10월 회사는 정직 3개월 징계를 수용하라고 요구했고, 지회는 감봉 이상의 징계 수위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회사는 징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회사는 2020년 12월 류승희 부지회장에게 ▲정직 2개월 ▲해고 기간 2개월 임금 반환 ▲향후 2개월 통상임금 공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시했다. 지회는 해당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부당징계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지회는 회사의 징계가 류승희 부지회장의 노동조합 활동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류승희 부지회장은 산재 요양 기간 중이었던 2019년 12월 지회 집행부 선거에 부지회장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본인과 같은 산재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악조노벨지회는 “작업중 손가락 3개를 잃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산재노동자에게 부당해고에 이어 또다시 정직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것은 노조탄압이며, 산재노동자들 두 번 죽이는 잔인한 행위”라면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인 악조노벨분체도료는 위험한 작업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노동자에게 산재발생의 책임을 돌리고 재징계를 통해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악조노벨분체도료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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