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혼들을 움직인 존 러스킨의 명저 경제학에도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명저, 2세기에 걸쳐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온 고전. 19세기 중후반 영국의 대표적 지성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자본주의의 폐해와 정통파 경제학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악마의 경제학’ 대신 ‘인간의 경제학’을 하라고 설파한다. 그는 기존 경제학이 ‘너무도 우발적이고 교란적인 요소’여서 논의에서 배제한 변칙적인 힘,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인 ‘애정’이야말로 경제학 최대의 변수라고 역설한다. ‘생명’을 가치의 유일한 척도로 놓는 그의 경제론에서는 정직, 도덕, 정의 등 인간의 정신적 가치들이 더 중시된다. 그를 통해 노동, 자본, 고용, 수요와 공급 등의 경제용어들이 전혀 새로운 철학적 의미를 얻는다. 경제학 비판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수식과 공식 대신 문학적인 문장 속에 그가 담아낸 것은 경제학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이상적 사회의 조건에 대한 빛나는 통찰이다. 이 책을 읽고 변호사 간디는 사회개혁가 간디로 인생 행로를 틀었고, 버나드 쇼는 가장 혁명적인 인물로 마르크스 대신 러스킨을 꼽았다.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가’ 존 러스킨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19세기 영국의 작가요 화가, 예술비평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로, 한때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영혼이 있는 사람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그의 대표 저서이자 사회개혁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처음 드러낸 책이다. 처음 잡지에 연재될 당시 러스킨의 주장은 지지에 앞서 비난을 먼저 받았다. 정통파 경제학자를 비롯한 독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쳤고, 그 때문에 책으로의 탄생조차 순탄치 않았다. 그의 주장이 너무 급진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온건해서, 즉 일반 경제학자들의 상식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거대한 사회시스템에 홀로 맞서는 외로운 지식인의 결기, 경제학을 화두로 지혜를 전하는 현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경제학 최대의 변수는 ‘애정’이다 이 책에서 존 러스킨이 가장 먼저 공격한 대상은 경제학의 ‘전제’다. 인간을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존재가 아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만 가정한 경제학은 인간에게 뼈대가 없다고 가정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정직’과 ‘애정’ 등 정신적 요소가 경제학 최대의 변수라며, 경제학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의로운’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경제학에서는 ‘생명’이 상품과 노동과 자본의 가치를 판별하는 유일한 척도다. 러스킨은 말한다. “생명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부(富)도 있을 수 없다.” 그 속에서 노동, 자본, 고용, 수요와 공급 등 경제용어가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러스킨의 ‘악몽’ 속을 살고 있다 19세기 중후반, 자본주의는 영국의 경제를 급성장시켰으나, 한편으로는 경제 공황과 실업, 빈부격차, 환경오염과 같은 폐단을 키우며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이런 파멸적 현상에 대한 대안은 물론 위기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상황이 러스킨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악마의 경제학’을 철폐하라고 외치며 새로운 이상사회의 꿈을 담아낸 것이 이 책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이다. 문체는 차가웠지만 주장은 뜨거웠다. 지금 우리 사회는 ‘러스킨의 악몽’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양극화와 물질만능주의, 실업과 불안정한 고용….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갖은 병폐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150년 전 러스킨의 선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나중에 온 이 사람’은 누구인가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성경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한 존 러스킨의 이야기는 사회경제체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편 약자의 고통과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나중에 온 사람’이란 사회경제적 약자의 다른 이름이다. 마지막 남은 일자리라도 붙잡기 위해 해질녘까지 인력 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노동자, 냉혹한 경쟁 속에서 능력으로 인간성마저 심판받아야 하는 고용인들, 그리고 불안한 처지에 놓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존 러스킨은 오늘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물음을 던진다. 사회의 마지막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러스킨은 노동자의 노동할 권리와 공평한 보수로써 생존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선택받는 것은 유능한 노동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이다. 또한 존 러스킨은 ‘나중에 온 사람들’이 동등하게 배려 받는 ‘조화로운 불평등’을 추구하는 사회가 더 큰 사회적 부(富)를 생산한다고 주장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과 고용문제들을 돌아보게 한다.
마르크스에 비견되는 러스킨의 영향력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그 문제의식과 후대에 미친 영향력 등 여러모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비견될 만하다. 하지만 두 이론의 전제와 결론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유물성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러스킨은 인간의 유심성(唯心性) 즉 사회적 애정에 입각한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펼쳐 보이고 있다. 경제학을 인간과 노동, 도덕, 가치 등 문명 전반의 문제와 연결 지은 그의 이론은 이후의 정치사상과 사회운동,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고, 영국 노동당의 이상과 간디의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사회사상가로서의 존 러스킨 러스킨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의아할 정도로 미미했다. 특히 건축, 예술 관련해서는 간헐적으로 소개되었으나 사회사상가로서의 존 러스킨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현재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그의 저서도 예술비평서 두 권이 전부다. 사회사상가로서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가 출간된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깊다. 스스로 ‘평생의 가장 진실되고 뛰어난 명문’이라 평하는 이 책은 러스킨이 예술비평가에서 본격적으로 사회사상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분수령에 해당한다. 더욱이 이 책은 특급 번역가 김석희의 번역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엄밀함을 추구하는 러스킨 특유의 성격상 문장 자체가 복잡할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예술평론가의 글답게 문학적으로도 현란한데, 김석희는 이를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여 원문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살려냈다. 120개가 넘는 많은 역주는 옮긴이가 번역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아직은 이 사회사상가가 낯설게 느껴질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존 러스킨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해설을 덧붙였다.
<추천사> “그 책은 한번 읽기 시작하자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생활을 이 책의 이상에 따라 변경하기로 결심했다. […] 내 생애에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바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다. 후에 이것을 구자라트 말로 번역하고 제목을 <사르보다야(만인의 복리)>라고 했다. […] 나는 나의 가장 깊은 확신 중의 어떤 것들이 러스킨의 이 위대한 책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랬기 때문에 그것이 나를 사로잡았고 내 생애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간디
“러스킨은 가슴으로 생각하는 희귀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자기가 보고 느낀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미래에 생각하고 말할 것까지도 생각하고 말했다.”
―톨스토이
“나는 평생 대단히 혁명적인 인물을 몇 사람 만났다. 내가 ‘당신은 누구의 영향으로 이런 혁명적 노선을 택하게 되었는가? 마르크스인가?’ 하고 묻자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인 간단하게 ‘아니, 러스킨이오’ 하고 대답했다.”
―버나드 쇼
“위대한 책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는 동시대인에게, 그리고 이후 세대에게도 가장 지속적이고도 유익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러스킨에 의해 훈육되었다. 그는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예언자였다. 그 시대는 참기 어려운 때였다. 지속될 수 없었다. 부르주아가 파멸하는 시기였으며, 물질주의 속에서 익사하는 시대였다.”
―르 코르뷔지에
<책속으로> “마술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의학, 점성술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천문학과 같이 가짜 경제학과는 명백히 구별되어야 하는 진짜 경제학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그리고 파멸로 이끄는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인 것이다.”
―p.162 ‘제4편 가치에 따라서’ 중에서
“생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부도 있을 수 없다. … 이 생명에는 사랑과 환희와 찬탄의 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이상한 경제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존재한 유일한 경제학이고, 앞으로도 다른 경제학은 있을 수 없다,”
―p.196 ‘제4편 가치에 따라서’ 중에서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상의 서로 반목하는 악한 자와 지친 자들에게도 좁은 가정의 화목보다 더 거룩한 화목이 오고, 평온한 경제가 이루어져, 그곳에서는 악한 자들도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고, 삶에 지친 자들도 휴식을 얻게 될 것이다.”
―p.214 ‘제4편 가치에 따라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