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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힘으로 돌파!" 창해에탄올지회 전면파업 36일

함께해서 즐거운 창해에탄올지회의 "슬기로운 파업생활"

  • 기사입력 2022.09.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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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신동민 기자 (화섬식품노조)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파업투쟁을 통해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크게 성장함을 빗댄 말입니다. 9월 16일은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창해에탄올지회는 전면파업에 들어간 지 36일 차입니다. 지칠 법도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천막에도 박수 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이쯤 되니 창해에탄올지회의 파업현장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함께 살펴봅시다. [편집자 주]

“스매싱은 못 참지~” 김재준 조합원이 큰 키를 이용해 강력한 스매싱을 날렸다. 아쉽게도 탁구공은 탁구대 엣지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갔다. 이를 지켜보는 조합원들은 아쉽다며 연신 손뼉을 쳤다. 9월 14일 파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조합원 15명이 전주 화산체육관 탁구장을 찾았다. 조합원들은 조를 편성해 경기를 진행했다. 조끼에 새겨진 단결, 투쟁 글자만 없으면 영락없는 전국체전 선수 자세다. 조합원들이 체육관에 등장하자 탁구를 하던 동아리 회원이 “단결, 투쟁!” 소리친다.

현장직원 모두가 함께 체육 활동을 한다는 것은 파업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조합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광용 창해에탄올지회장은 “창해에탄올은 소주 원료가 되는 주정을 판매하는 업계 1위 회사다. 밤낮없이 기계를 돌려야 한다. 그 때문에 교대근무로 한 조에 5명 정도서 일 끝나고 술 한잔하는 정도였지 다른 근무조와 이렇게 시간을 길게 보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체육 활동 이외에도 여행, 산행, 각종 활동을 함께 하며 창해에탄올지회 조합원들은 하나가 되었다.

이광용 지회장이 선전물을 묶고 있다.
이광용 지회장이 선전물을 묶고 있다.

지회를 만드는 과정부터 파업에 이르기까지

창해에탄올지회를 만든 주축은 지회가 설립되기 전 당시 노사협의회 위원들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심지어 관리직이 임금 9%를 올릴 때까지 현장직원들은 기약 없이 기다리라고 통보하기까지 했다. 이민우 사무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회사는 노동자들을 회사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아 보였다. 노사협의회도 말만 번지르르하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 가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사무장은 “당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을 다녀보고 함께 연대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곳이 민주노총이라서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창해에탄올 공장은 조합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소속 지회의 연대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지회 파업 천막은 전북지부의 다른 지회장들이 항상 함께하고 있고 철야농성도 당번을 정해 함께 지키고 있다.

특히 9월 14일은 화섬식품노조 부산경남지부 김창우 일산실업지회장, 구명수 사무장이 투쟁기금을 전달하러 경남에서 전북까지 2백 킬로미터 이상을 달려왔다. 2백 킬로미터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거리다. 투쟁기금을 전달하며 김창우 일산실업지회장은 “창해에탄올 동지들의 투쟁 승리를 위해 동종업계로 함께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일산실업은 같은 주정업계 회사로 경남 함안에 있다. 연대의 정이 전북지부를 넘어 전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위원장, 장종수 전북지부장, 창해에탄올지회, 일산실업지회 동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위원장, 장종수 전북지부장, 창해에탄올지회, 일산실업지회 동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철야농성 천막에서 파업꿀팁 전수

박성철 후생복지부장은 “철야 농성 천막에서 파업 비법을 전수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천막에는 이형재 전주페이퍼지회장, 한공연 KCC전주도료지회장, 두창훈 EMK승경지회장. 한솔홈데코지회소속 최병하, 이형로 조합원이 지회운영과 파업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 창해에탄올 사측이 집으로 파업 해제를 종용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이형재 전주페이퍼지회장은 “전주페이퍼도 노조설립 당시 회사에서 조합원 가족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돌리며 회유했던 일이 있었다”며 “가족들이 회사의 너절하고 야비한 수법에 화를 냈고, 나중에는 가족들이 나서서 피켓을 만들고 회사 정문 앞에서 함께 시위했다”고 말했다. 창해에탄올지회 조합원 중 가장 연장자인 심학기 조합원은 회사의 행태에 대해 “아직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며 “회사에 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동생들을 위해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환 법무법인 ‘오월’ 노무사는 “(회사가 보낸 가정통신문이) 가족과 조합원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파업 철회를 종용하는 내용으로 부당노동행위로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담당 직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파업 35일차 천막전경
파업 35일차 천막전경

투쟁은 계속된다

16일 창해에탄올 노사는 한 차례 더 교섭을 진행했으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지회가 수정안을 제시했음에도 협약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정선영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조직국장은 사측 교섭당사자가 결정 권한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 국장은 “사측 교섭위원들은 사실상 꼭두각시다. 노동조합을 떠나 부사장이 결정하면 그 누구도 문제제기 하거나 뒤집을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창해에탄올지회의 투쟁은 회사 내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구조적 문제를 민주적으로 바꿔내는 투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계절이 흘러가듯 철야농성도, 천막 사수도, 아침마다 집회도 계속된다. 9시부터 함성을 지르고 지회 조합원의 투쟁 의지를 불태운다. 아침마다 많은 연대 단위가 집회에 함께한다. 15일에는 전날 철야농성조와 함께 양순원 동원페이퍼지회장, 박찬욱 KCC전주건재지회장, 최영수 한국음료지회장, 박철용 신젠타지회장, 삼정 김정섭지회장, 오영순 하이솔이엠지회장 등이 함께 했다. 김원겸 조직부장은 마이크를 잡고 조합원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 단결투쟁가를 불렀다. 조곤조곤한 말투와는 다르게 아침 집회 현장에서만큼은 목소리가 커졌다.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하자. 투쟁!”

아침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침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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